불확실성은 조직을 불안하게 만들고, 불안은 모방을 부릅니다. 잘나가는 회사 벤치마킹,
정말 안전한 선택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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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HR 담당자들이 가장 의지하는 것은 '성공 기업의 사례'입니다. "구글의 OKR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빅테크 기업의 직원경험(EX) 설계는?" "AI 채용 솔루션 도입 사례가 있나요?" 검증된 답을 찾으면 큰 실패는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습니다.
조직사회학자 DiMaggio와 Powell은 이런 현상을 '제도적 동형화'로 설명했습니다. 조직들이 효율성보다 정당성(legitimacy) 확보를 위해 서로를 모방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에는 모방적 동형화가 강화됩니다.
하지만 같은 제도를 도입해도 결과는 천차만별입니다. 구글의 OKR이 A사에서는 형식적 서류작업이 되고, B사에서는 혁신의 도구가 됩니다. 차이는 '맥락'에 있습니다. 제도는 그것이 탄생한 조직의 문화와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AI 시대, 벤치마킹은 더 쉬워졌지만 조직의 다양성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습니다. HR의 전문성은 트렌드를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조직의 답을 스스로 설계하는 데 있습니다. 모방자가 아닌 설계자로서 HR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볼 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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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죠?" — 반복되는 질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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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 강의나 세미나에서 거시 트렌드를 다룰 때마다 받는 질문들은 놀랍도록 비슷한 패턴을 보입니다. 직원경험(EX) 설계 방법론, DX 기반 교육 체계 구축, ESG와 인사제도의 연계, AI 채용 솔루션 도입 사례 등. HR 담당자들은 최신 선진 기업의 사례를 수집하고, 벤치마킹 자료를 찾으며, 검증된 제도를 찾습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AI가 업무 방식을 재정의하고, 하이브리드 근무가 뉴노멀이 되었으며, MZ세대는 기존과 다른 가치관을 요구합니다. 경영환경이 급변할수록 HR의 의사결정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검증된 답'을 찾습니다. 성공한 기업의 제도를 벤치마킹하면 적어도 큰 실패는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남의 성공 방정식이 우리 조직에도 통할까요?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본질은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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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직은 왜 서로 닮아가는가 —
제도적 동형화의 작동 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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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사회학자 DiMaggio와 Powell(1983)은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조직들이 효율성 향상을 위해 변화를 시도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결과는 조직들이 점점 유사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를 '제도적 동형화(Institutional Isomorphism)'라 명명했습니다. 조직은 단순히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성(legitimacy)'을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도적 동형화는 세 가지 메커니즘으로 작동합니다.
첫째, 강압적 동형화(Coercive Isomorphism)입니다.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른 주52시간제 도입이나 ESG 평가를 위한 다양성 정책 수립처럼, 외부 압력에 의해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입니다.
둘째, 규범적 동형화(Normative Isomorphism)입니다. HR 자격증 과정에서 배운 '표준 직무기술서' 양식이나, 대기업 HR 출신들이 이직하면서 확산시키는 9-Block 평가 방식처럼, 전문가 집단을 통해 확산되는 표준 관행입니다.
셋째, 모방적 동형화(Mimetic Isomorphism)입니다. DiMaggio와 Powell은 불확실성이 모방적 동형화의 가장 큰 동인이라고 지적합니다. 목표가 모호하거나 기술이 불명확할 때, 조직은 성공적이라고 인식되는 다른 조직을 모델로 삼습니다. 구글의 OKR, 넷플릭스의 무제한 휴가제, 아마존의 Two-Pizza Rule 등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입니다.
HR 영역에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작동하지만, 최근의 높은 불확실성 환경에서는 모방적 동형화가 특히 강화되고 있습니다. AI와 디지털 전환이 가져온 기술적 불확실성, MZ세대의 새로운 가치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하이브리드 근무 등 명확한 답이 없는 변화들이 쏟아지면서, HR 담당자들은 더욱 '검증된 사례'에 의존하게 됩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 '업계 1위 기업도 하는 제도'라는 논리가 강력한 설득력을 갖습니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른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방은 비합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합리적 선택입니다. 문제는 모방 자체가 아니라, 제도가 작동하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형식만 가져오는 데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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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같은 제도, 다른 결과 —
벤치마킹이 실패하는 이유는 '맥락의 부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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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IT 중견 A사는 구글의 OKR을 정교하게 벤치마킹했습니다. 목표 설정 방식부터 평가 주기까지 완벽하게 복제했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6개월 만에 형식적인 서류 작업으로 전락했고, 구성원들의 피로감만 증가했습니다. 반면 스타트업 B사는 OKR의 핵심 철학만 차용해 자사 문화에 맞게 변형했습니다. 분기별 목표를 월별로 조정하고, 평가 방식도 단순화했습니다. 3년째 성공적으로 운영 중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요? 제도의 성공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제조건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구글의 OKR은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높은 문화, 도전적 목표 설정을 장려하는 리더십, 실패를 학습으로 전환하는 조직 분위기가 뒷받침되어 있습니다. 이런 맥락 없이 제도만 이식하면 거부반응이 일어납니다.
제도화 이론에서는 이를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조직은 정당성 확보를 위해 제도를 도입하지만, 실제 운영은 기존 방식대로 합니다. 겉으로는 선진 제도를 채택했지만, 속으로는 전혀 다른 논리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HR 제도는 복제 가능한 '제품'이 아니라 각 조직이 해석해야 할 '언어'에 가깝습니다. Best Practice가 Worst Fit이 되는 이유는 이러한 번역과 재해석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입니다. 제도는 그것이 탄생한 조직의 DNA를 담고 있습니다. 문화적 맥락, 리더십 스타일, 사업 단계, 구성원 특성, 과거의 성공과 실패 경험이 모두 녹아있습니다. 이를 무시하고 제도만 베끼는 것은 씨앗은 옮겨 심으면서 토양과 기후는 고려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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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모방의 이면 —
'책임 회피'보다 더 큰 문제는 '판단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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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업계 Best Practice를 따랐습니다."
이 한 마디는 HR 담당자에게 강력한 방패가 됩니다. 실패하더라도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실행이 문제"라고 변명할 수 있습니다. 혹은 "글로벌 선진 기업도 어려워하는 제도"라며 책임을 희석시킬 수 있습니다. 조직사회학에서는 이를 '형식적 순응(ceremonial conformity)'이라 부릅니다. 실질적 개선보다 형식적 준수가 목적이 되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판단의 중단'입니다. 벤치마킹에 익숙해지면 점차 독자적 사고를 멈추게 됩니다. '왜 이 제도가 필요한가'보다 '누가 이미 하고 있는가'를 먼저 묻게 됩니다. HR이 전략적 파트너가 아니라 단순한 제도 복사기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DiMaggio와 Powell의 연구에 따르면, 조직 분야가 구조화될수록 동형화 정도는 더욱 심해집니다. HR 커뮤니티가 활발해지고, 벤치마킹 자료가 풍부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조직의 다양성은 줄어듭니다. 모두가 같은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같은 사례를 공유하며, 같은 컨설턴트의 조언을 듣습니다. 결과적으로 '정당성 있는' 제도의 범위는 점점 좁아집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정당성 확보에만 집중합니다. 주주에게, 경영진에게, 구성원에게 "우리도 선진 제도를 도입했다"고 보여주는 데 급급합니다. 성과급제도는 있지만 실질적 차등은 미미하고, 경력개발제도는 있지만 실제 경력개발은 일어나지 않으며, 워라밸을 외치지만 장시간 근무는 여전합니다.
모방은 불안을 일시적으로 덮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의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할 기회를 놓치게 만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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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술이 빠를수록 판단은 더 중요하다 —
AI 시대의 HR 딜레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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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AI 시대가 되면서 벤치마킹은 더욱 쉬워졌습니다. HR Tech 솔루션들이 '업계 표준 템플릿'을 제공하고, 생성형 AI는 몇 초 만에 글로벌 기업의 HR 제도를 요약해줍니다. 클릭 몇 번이면 실리콘밸리의 성과관리 체계를 복사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제도화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동형화를 가속화할 뿐입니다. 기술적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모방적 동형화는 더욱 강해집니다. 모든 기업이 동일한 AI 솔루션을 사용하고, 같은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조직의 다양성은 급격히 감소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AI가 추천하는 '최적 제도'를 모든 회사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면, 결국 모든 조직이 똑같아질 것입니다. 그때 경쟁력을 가질 조직은 AI의 추천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자신만의 길을 설계한 회사일 것입니다.
기술은 분명 강력한 도구입니다. 데이터 분석으로 이직 위험을 예측하고, AI로 채용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우리 조직에 맞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는 AI도 답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조직의 역사와 문화, 전략과 가치를 깊이 이해하는 HR 전문가만이 판단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제도적 동형화 이론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모방의 유혹은 강해지지만, 그럴수록 독자적 판단이 중요해집니다. AI는 판단의 도구일 뿐, 판단의 주체는 여전히 사람이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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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HR의 역할을 재정의할 때입니다. HR은 '선택자(Selector)'가 아니라 '설계자(Designer)'가 되어야 합니다. 시장에 나와 있는 제도를 골라 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조직에 맞는 제도를 설계하고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실천 프레임워크를 제안합니다.
첫째, 우리 조직을 진단하라.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합니다. 우리 조직의 문화적 특성은 무엇인가? 리더십 스타일은 어떠한가? 현재 사업 전략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구성원들의 준비도는 어느 수준인가? 이런 진단 없이는 어떤 제도도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둘째, 제도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라. 벤치마킹 대상 제도를 그대로 가져오지 말고, 분해해서 핵심 원리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조직의 언어로 재구성해야 합니다. 구글의 OKR이 좋다면, 왜 그들에게 효과적인지를 분석하고, 그 원리를 우리 맥락에 맞게 재설계하는 것입니다.
셋째, 작게 시도하고 빠르게 수정하라. 전사 도입 전에 파일럿 테스트를 해야 합니다. 특정 부서나 팀에서 먼저 실험하고, 피드백을 받아 수정해야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학습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제도화 이론에서 말하는 '느슨한 결합(loose coupling)'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HR 담당자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 이 제도는 우리 전략과 연결되어 있는가?
▪ 리더와 구성원이 이를 실행할 준비가 되었는가?
▪ 실패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학습할 것인가?
벤치마킹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맹목적 모방이 아닌 비판적 학습을 하라는 것입니다. 제도적 정당성에 안주하지 말고, 실질적 효과성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남의 성공 방정식을 베끼려 하지 말고, 우리만의 방정식을 만들어가라는 것입니다.
HR의 전문성은 트렌드를 아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조직의 답을 스스로 설계하는 데 있습니다. 불확실할수록 판단하는 HR이 이깁니다.
이제 선택은 HR 담당자의 몫입니다. 계속 모방자로 남을 것인가, 설계자로 진화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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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이 회사에서 전문성을 인정 받는 그날까지
히든HR이 함께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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